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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긴 새 / 천양희

햇살 한 줌 2008. 1. 9. 11:51
목이 긴 새
               / 천양희


물결이 먼저 강을 깨운다

물보라 놀라 뛰어오르고
물소리 몰래 퍼져나간다

퍼지는 저것이 파문일까

파문 일으키듯
물떼새들 왁자지껄 날아오른다
오르고 또 올라도 하늘 밑이다

하늘 아래 날개 없는 것들 너무 많구나

몇 번이나 강 너머 하늘을 본다
하늘 끝 새를 본다
그걸 오래 바라보다
나는 그만 한 사람을 용서하고 말았다

용서한다고 강물이 거슬러 오르겠느냐
강둑에 우두커니 서 있으니 발끝이 들린다

내가 마치 외다리로 서서
몇 시간 꼼짝 않는 목이 긴 새 같다

혼자서 감당하는 자의 엄격함이 저런 것일까
물새도 제 발자국 찍으며 운다
발자국, 발의 자국을 지우며 난다


(문예중앙.2004.여름호)
*계간<시선.2004.가을호>.시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