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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밥상/ 이용한

햇살 한 줌 2008. 2. 23. 10:24

이상한 밥상

 

어느 날 내가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10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부엌에서

달그락달그락 밥상을 차리고 계신다

10년 전보다 20년은 더 젊어진 어머니는 콩나물 무치던 손으로

이제는 늙어버린 내 손을 밥상 앞으로 잡아끈다

왜 이렇게 늦은 거냐, 밖에서 또 놀다 온 거냐?

젊은 어머니의 잔소리를 참아내며 늙은 내가 밥을 먹는다

어머닌 참, 내가 아직도 어린애인 줄 아세요?

그럴 때마다 이놈 자식이, 어머니의 싱싱한 손이 낡은 내 엉덩이를 후려친다

너는 커서 대체 뭐가 되려고 그러냐?

어머니, 난 이미 어머니만큼 살았고, 인생의 절반을 시인으로 살았으면 됐지,

뭐가 또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도 이놈이, 밥 흘리지 말랬더니,

그거 다 저승 가서 먹어야 해!

어느 날부턴가 다 낡은 나에게 싱싱한 어머니는 죽지도 않는다.

 

- 시집 ‘안녕, 후두둑 씨’(실천문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