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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누에고치/이상선

햇살 한 줌 2010. 2. 14. 13:53

경상일보

5월,누에고치/이상선


 

할머니 지문 찍힌 뽕잎마다 이랑진 삶/

넉 잠 든 잠실에 들면 반투명 누에들이/

큰스님 넉넉한 손처럼 가진 것 죄 내줄 때//

 

이따금 명주실 같은 부드러운 바람결이/

 

자디 잔 물비늘을 은어 떼로 풀어놓고,/

풀벌레 달빛 속에서 반짝반짝 울고 있다.//

 

지는 꽃의 뒷등마냥 적막한 누에고치/

길을 버린 누에들은 곡기마저 물리친다,/

폭폭한 제 속울음도 다 퍼내지 못하고.//

 

마분지 빛 흐린 날의 장막 한 겹 걷어낸다./

얼음 박힌 동치미국, 할머니 손맛 되새기며/

시렁 위 채반에 올라 가만가만 숨 고른다.//

 

호박벌은 귓전에서 풀무 소리 잉잉대고/

가느스름 눈 뜬 채 장엄 열반 꽃 둥지 엮는,/

한 살이 터억 매조지한 울 할머니 뒤태 같다. (윤금초 선)


-「5월, 누에고치」전문/이상선(1966년생)


 할머니의 수고로움과 누에의 생에도 종교적 열반이 있다.

열반으로 가는 생의 흔적들을 살펴보면

ꡒ지문 찍힌 뽕잎ꡓ에 묻은 노고나ꡒ가진 것 죄 내줄 때ꡓ의 배려,

ꡒ지는 꽃의 뒷등마냥 적막한 누에고치ꡓ에서는 사색을 발견할 수 있다.

세월의 매조지가 탄탄한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