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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전에서 / 김남규

햇살 한 줌 2008. 1. 5. 15:31
  • [2008 신춘문예] 염전에서
  •                                      /김남규

    • 오늘도 서산댁은 낮은 바다 막고 선 채
      뒤축의 무게로 새벽 수차를 돌린다
      바람은 빈 가슴 지나 먼 바다를 일으키고

      지친 오후 밀어내고 살풋 잠이 들자
      잠귀 밝은 수평선 해류 따라 뒤척이며
      뒤틀린 창고 이음새, 덴가슴도 삐걱인다

      남편은 태풍 매미에 귀항하지 못했다
      소금기 절은 목숨 몇 잔 술로 달랠 때
      눈시울 노을로 번져 잦아드는 썰물빛

      설움으로 풍화된 닻 말없이 내려두고
      무명의 소금봉분, 메다 꽂힌 삽자루여
      가슴엔 뱃고동 소리 야윈 달이 차오른다


       

    • 김남규씨
    • ◆당선소감… 시조로 소외된 사람들 어루만질 수 있다면… 

      무엇보다 가장 먼저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5년 전이었습니다.
    •  대학교 중간고사 대체로 나간 시조백일장에서 난생 처음 쓴 시조로
    • 우연히 상을 타게 되었습니다.
    • 그 후 지금까지 습작하고 있는 시조는 김용택 시인의 말처럼
    • 어쩌면, 시가 스스로 걸어서 제게로 온 듯합니다.
    • 밤마다 수없이 울음을 삼켜가며 수십 번, 아니 수천 번 포기를 생각했었지만,
    • 이제야 왜 제게 시조가 걸어왔는지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되었습니다.

      이 젊은 날의 힘겨움을 시조로 이겨내라는 이지엽 선생님의 가르침 덕분에
    • 지금까지 달려왔습니다.
    • 가진 자와 강자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역사라면, 못가진 자와 약자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 문학이라고 선생님께서 늘상 말씀하셨습니다.
    • 그러나 제가 감히 소외된 자를 어루만질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하며
    •  지금도 망설이고 있습니다.
    • 고통 받는 자의 아픔은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이기 때문입니다.
    • 그렇지만 이 소중한 작업이 그들에게 뜨끈한 밥 한공기 되진 못해도,
    • 그들을 기억하는 눈물 한 방울은 될 수 있으리라 입술을 지그시 깨물어 봅니다.

      저에게 문학을 힘으로 삼고 살아가라는 경기대학교 국어국문과 교수님들과
    • 문예창작과 교수님들,
    • 그리고 제가 이 땅에 굳건히 서있을 수 있게 해주는 가족들과 이지엽 선생님,
    • 사랑하는 이들에게 영광을 돌리며,
    • 끝으로 아직 너무나 부족한 저를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진심으로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1982년 충청남도 천안 출생
      ▲2003년 제 4회 전국 가사·시조 창작공모전 일반부 우수상
      ▲경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3년 재학중


     

    • 이근배 시인
    • ◆심사평… 빈틈 없는 구성… 시적 감도 높여줘 

      새벽의 언어를 캐기 위하여 밤을 밝혀온 생각들이 시조의 높은 가락을 뽑아 올리고 있다.
    • 신춘문예의 벽을 오르기 위해 모국어의 틀 속에서
    • 오늘의 삶을 깎고 다듬는 손길들이 섬세하고 맵차다.
    • 더욱 반가운 것은 응모작품들이 거의 고른 수준으로 상승하고 있음이다.
    • 시조가 지니고 있는 시적 구성요소를 잘 체득하고 있을 뿐 아니라
    • 아주 자재롭게 글감을 찾고 거기 맞는 가락을 짜내는 일에도 능숙한 작품들이 많았다.

      ‘염전에서’(김남규), ‘눈속의 새’(황성곤), ‘그 해 겨울 갯벌에서(송이나),
    •  ‘감나무 합창’(한을비), ‘풀씨이야기’(유순덕),
    •  ‘겨울 쑥부쟁이’(임채성)등이 마지막까지 밀고 당기었다.

      ‘눈속의 새’는 새 맛내기로는 단연 앞섰다.
    • 그러나 관념의 과잉이 의미의 실상을 보여주는 데는 미흡했다.
    • ‘그 해 겨울 갯벌에서’는 우선 제목이 주는 추상성이 걸린다.
    •  “그 해 겨울”이면 “갯벌”의 지명도 따라야 하지 않을까?
    • 평시조의 시행을 산문형으로 이어나간 것도 거슬렸다.
    • ‘감나무 합창’은 너무 정직하게 형식미를 지킨 것이 오히려 시를 답답하게 가두고 있다.
    • 시조의 형식은 고체가 아니라 액체임을 깨우치기 바란다.
    •  ‘겨울 쑥부쟁이’는 시를 구성하는 맛이 탄탄하다.
    • 그러나 진술적 낱말들이 자주 튀어나온 것이 시의 감도를 떨어트리게 했다.
    •  치열한 다툼 끝에 ‘염전에서’에게 낙점을 주었다.

      당선작은 왜 시조를 쓰는가에 대한 답을 알고 찾아낸 글감에 대해
    •  거의 빈틈이 없을 정도로 말을 꿰고 있다
    • . “오늘도 서산댁은 낮은 바다 막고 선 채”의 첫 수 초장에서
    •  “가슴엔 뱃고동소리 야윈 달이 차오른다”의 마지막 수 종장까지
    • 소금밭을 배경으로 “서산댁”을 내세운 삶의 포착을 외연성과 내포성이 알맞게 결구하여
    • 시조가 갖는 시적 감도를 높여주고 있다. 더욱 정진하시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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