숯
한 우 진
좋은 나무는 산꼭대기에 있단다, 어머니는 내게 고약을 듬뿍 붙이며 혹독한 바람을 견딘 나무가 마디단다, 나는 형들을 제치고 재빨리 어른을 베꼈다 뻘뻘 장남 아닌 장남 땔감 아닌 땔감 청솔가지는 눈을 맞아 푸르렀다 흥청흥청 눈발이 물참나무에서 술을 거르고 나는 불머리를 앓았다
가난은 태우면 태울수록 겨울밤을 견디는 숯이 된단다, 겨울이 시작되자 큰형은 폐병肺病을 꺼냈다 나무에 걸려있던 구름이 제법 울긋불긋해지고 새들은 비린내를 풍겼다 축축한 곳에서는 혼도 녹나기 십상이란다, 어머니는 머리카락을 잘랐고 나는 불을 지폈다 뻘뻘 항아리 안에 형을 안쳤다
눈물이라도 남았냐고 시냇물은 찔찔거렸다 불은요 밟아도 삐죽삐죽 돋는 새싹 같은 걸요, 나는 젖은 채로 된바람과 맞섰다 징집당한 눈발이 자싯물의 밥알처럼 흩어졌다 어둠이 모이면 나는 불의 유행가를 불렀다 유목乳木1)에 걸터앉아 날이 샐 때까지 비릿한 숯을 누웠다
1) 호마護摩할 때 불사르는 뽕나무 따위의 생나무
_《M》2007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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