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지 3인 시집

늙은 오이

햇살 한 줌 2008. 8. 4. 09:32

늙은 오이

 

               청정화

 

 

출렁이는 억새 물결

산 아래 밭고랑에서 멈칫 선다

 

저...여기 있어요

 

은밀한 손짓으로 다가오는 소리

싸아하니

느껴지는 바람냄새에

죽음이 달려온다

 

그녀를 지탱해 준

가늘고도 질긴 생명선은

이제

마지막 나신을 불 태우고 있다

 

하나씩

둘 씩

모두 떠나간 텅 빈 그 자리엔

파아란 하늘이 내려와

큰 댓자로 눕는다

 

그녀는 시퍼런 칼날아래

긴 목을 내밀고 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 누군가를 걱정하는 껍데기처럼.

 

 * 2003년 3인 시집<늙은 오이> 게재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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