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오이
청정화
출렁이는 억새 물결
산 아래 밭고랑에서 멈칫 선다
저...여기 있어요
은밀한 손짓으로 다가오는 소리
싸아하니
느껴지는 바람냄새에
죽음이 달려온다
그녀를 지탱해 준
가늘고도 질긴 생명선은
이제
마지막 나신을 불 태우고 있다
하나씩
둘 씩
모두 떠나간 텅 빈 그 자리엔
파아란 하늘이 내려와
큰 댓자로 눕는다
그녀는 시퍼런 칼날아래
긴 목을 내밀고 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 누군가를 걱정하는 껍데기처럼.
* 2003년 3인 시집<늙은 오이> 게재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