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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천강 물빛 1950년/허만하

햇살 한 줌 2008. 10. 20. 05:53

 

 

청천강 물빛·1950년

허만하



강은 바다보다 멀리 흐르고 있었다.

8백 야드 강폭은 카빈 소총 개머리판에서 총구에 이르는 길이보다 멀었다.

도하지점에서 강은 흘러온 이유를 잠시 되돌아본 다음 다시 방향을 잡아 황해를 향했다.

지리 시간에 배웠던 파란 이름 앞에서 나는 벌써 격렬한 고독이었다.

멀다. 집에서 너무 멀다. 첫눈의 예감에 떨고 있는 북국의 산은 멀리서 아름다웠다.

이유도 없이 나는 거룻배 물 그늘이 흔들리고 있는 강변까지 와 있다.

강 건너 썰렁한 들녘을 팔꿈치와 무릎으로 걸었던 초겨울 어느 하루.

낯선 바람 냄새 같던 아득한 하루.

얼어붙는 노을이 하늘에서 울먹이는 것을 보고,

고도를 낮춘 납의 하늘에서 통곡처럼 함박눈이 쏟아지던 생소한 지명까지는 다시 그 다음 일이었다.


―《현대시학》200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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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하 / 1932년 대구 출생. 1957년 《문학예술》로 등단. 시집

『해조』『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물은 목마름 쪽으로 흐른다』『야생의 꽃』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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