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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말랭이 / 정경화

햇살 한 줌 2007. 12. 3. 23:29

무말랭이

 

        정경화

메마른 입 안 가득 침이라도 고이라고
무수한 주름 위로 가을볕을 담는다
바람의 떨리는 혀가 순례처럼 핥고 간 뒤


그리운 시간들은 왜 자꾸 노래가 되나
뜨락에 멍석 펼쳐 하얀 꽃을 꿈꾸었던
어린 날 두고 온 달빛 함께 우려 건진다


뒤틀린 상처까지 가슴 깊이 안아주마
비로소 남은 뼈마저 누굴누굴 간이 배면
찬바람 휑한 밥상에 되씹히는 가을이 깊다

*이정환의 시조 산책 219*

전통적 음식재료를 시의 소재로 삼았군요. ‘무말랭이’는 향수를 자아내게 합니다.
가을이면 삼동을 나기 위해 우리 어머니들은

 ‘무’를 알맞은 크기로 썰어 멍석 같은 곳에 가지런히 뉘어 볕살 아래 말렸지요.

가난하던 그 시절, 볼 때마다 메마른 ‘입 안 가득 침’이 고일만 했지요.
‘무수한 주름 위로 가을볕’을 담고 있다고 시인은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때때로 ‘바람의 떨리는 혀가 순례처럼 핥고 가’기도 하지요.
그럴 적마다 ‘무말랭이’는 더욱 고들고들 말라가면서 그 진득한 맛을 안으로 쟁이지요.
이 대목에서 시인은 나중에 우리가

‘가을볕’과 ‘떨리던 바람’까지 함께 먹게 될 것을 예견했을 법 합니다.

둘째 수에서 ‘노래’가 되는 ‘그리운 시간’과 더불어
‘뜨락에 멍석 펼쳐 하얀 꽃을 꿈꾸’던 어린 날을 떠올리며
그 때 그 달빛과 함께 우려 건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무말랭이’는 ‘뒤틀린 상처까지 가슴 깊이 안아’줍니다. ‘
남은 뼈마저 누굴누굴 간’이 밸 즈음
‘찬바람 휑한 밥상에 되씹히는 가을’이 깊어가지요.
그 당시로 문득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집니다.

이렇듯「무말랭이」는 우리의 향수를 자극합니다.
어머니와 할머니 그리고 고향집에 대한 뭉클한 그리움을 안겨줍니다.

정경화 시인은 200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하였고,
최근에 처녀시집『풀잎』(동학사)을 펴내었습니다.
첫 시집 상재를 축하하며, 앞으로 문학적으로 더 큰 성취 있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