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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로 낳은 알처럼 / 정수자

햇살 한 줌 2007. 12. 9. 00:02

눈물로 낳은 알처럼

 

                                       

                                           정 수 자

 

 

인적 끊긴 밤 갯벌을 만삭으로 기어가

기어이 땅을 파고 알을 낳는 바다 거북

하나씩 낳을 때마다 눈물이 길게 흐른다

 

저토록 눈물 젖어 시를 쓴적 없다고

슬며시 눈 붉히며 창가로 돌아서니

어둠 속 가로등이 또 알을 낳는 중이다

 

갓 낳은 뽀얀 알들 숨소리가 뜨거워서

치받는 말을 안고 뒤뚱대는 긴 저녁

한 생을 서늘히 울린 섧은 시가 그립다.

 

 

 

***또 숨소리 뜨거운 시 하나 읽는다.

만지면 생명의 숨결 느껴지고 아직 혈흔도 남아있는 듯한 시와

막 출산하고 눈물과 땀을 훔치는 어머니 시인을 만난다.

 

하얗고 매끄럽고 따뜻한 시를 낳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바다거북이 알을 낳는 장면으로 시는 시작된다.

 

인간을 제외한 모든 동물은 혼자서 알 또는 새끼를 낳는다.

몸을 풀기 위한 모든 준비도 혼자서 다 한다.

거북은 알을 들키지 않기 위해 인적 끊긴 밤을 택하였다.

아무도 보지 않는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에서

모래를 파고 알을 낳는 바다거북의 검은 얼굴이 떠오른다.

생명을 탄생시키는 모든 어미는 고통이라는 대가를 치른다.

 

알 하나를 낳을 때마다 흐르는 눈물.

몇십 개의 알을 낳으려면 눈물은 마를 시간이 없이 계속 흐를 것이다.

그것을 시인은 '눈물이 길게 흐른다' 라고 표현한다.

생물학적으로는 거북은 우는 것이 아니라  몸안의 염분을 짜내기 위한 수단으로

염분을 모아 눈시울에 있는 분비샘으로 보내면 그것이 눈물처럼 흐른다고 한다.

 

그러나 하필이면 왜 그 순간인가.

하기야 사람의 염분도 힘쓸 때 나온다. 땀흘려 일하거나 감정이 격해졌을 때 눈물로 염분이 배출된다.

우는 것도 매우 힘드는 일에 속하는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거북은 등딱지로는 땀을 흘릴 수 없으므로 눈물이 염분 배출의 좋은 수단일 것이다.

바다 거북은 울면서 울면서 알을 낳고 주변의 아직 따뜻한 모래를 모아 알을 덮는다.

 

'저토록 눈물 젖어 시를 쓴 적 없다고'  이미 태어난 시에 대한 회한의 눈시울을 적시는 시인.

그러나 그렇지 않다고 나는 감히 단언할 수 있다.

 

정수자시인의 시를 읽다보면 자주 명치끝이 아파오다가도

시의 푸른 느티나무 그늘에서 쉴 수 있음에서

그녀가 어둔 밤 바다거북처럼 시를 낳으며 홀로 울음 운 시간들이

얼마나 많았을까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그렇게 붉은 눈으로 '창가로 돌아서' 면  또 멀리 길가에 동심원을 그리는 가로등이 보인다.

 

 '어둠 속 가로등이 또  알을 낳는 중이다' 라고 말하는 시인은

어쩌면 가로등의 눈물도 보았을 지 모른다.

 

'가로등이 갓 낳은 뽀얀 알들의 숨소리' 를 들으며

말이 시 되지 못하고  치받혀 올라오는 그것을 안고 뒤뚱대는 긴 저녁에

'한 생을 서늘히 울린 섧은 시가 그립다' 고 절규하는 시인을 만난다.

 

그 절규는 곧 눈물되어 흐른다. 어둔 바다의 거북처럼 훨씬 오래 걸려

시 하나 낳고, 시인은 더 따뜻하고 염분이 많은 눈물을  쏟고 있는 것이다.

 

시인이 어떤 자세로 시를 써야 하는지를 조용히 말해 주고 있는 이 시를 읽고 나니,

이 저녁 눈물로 낳은 알같은 섧은 시 하나 쓰며 나도 하염없이 눈물 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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