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은 하고 있네
백이운
산 자와 죽은 자가 한 획으로 나뉘어
울음의 끈을 놓지 못하는 벽제 하늘 지나면
화두를 타파한 듯이 열리는 적멸의 땅.
죽은 자를 위하여 초목은 눈부시고
연등은 붉게 타 그 초록 달래는 걸
이제야 알 나이인가, 등줄기가 따뜻하네.
적막도 깨뜨려질 때 향기로운 법 같아서
보이지 않는 눈으로 나, 그대를 보겠네
轉生의 아름다운 체험 꽃들은 하고 있네.
-이 시조는 근작 중에서도 주목을 요하는 작품이다.
이전의 감각이 사유와 잘 어우러지는 요즘 작품의 한 진수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즉은 자를 위하여’ 초목이 눈부시다는 대목이나 ‘보이지 않는 눈으로’ 그대를 보는 구절은 사유와 감각의 조화가 특히 돋보인다.
또한 「꽃들은 하고 있네」의 ‘하고’에서도 이러한 언어 감각을 엿볼 수 있다.
본래 ‘하다’ 앞에는 목적어를 놓아야 주어와 서술어의 호응이 이루어지는데,
시인은 제목에서 이를 의도적으로 감추고 작품의 종결부인 마지막 장에서는 문장 구조를 도치시켜 놓는다.
중의적 표현이 모호성을 유발하고 이 모호성은 다시 시의 문맥에 변화를 야기한다.
‘하고’가 연상시키는 일반적인 선입견과 전혀 다른 ‘체험’에
그것도 ‘전생’이라는 고차원적 체험이라는 것을 슬쩍 끼워놓음으로써 이 대목을 거듭 읽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의 ‘하고’는 오해의 유발을 통해 색다른 긴장과 이완을 만드는 하나의 장치임을 알 수 있다.
-정수자 시인 해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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