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꽃다리
원은희
고삐 풀린 꿈을 붙든 바람 한 자락이
텅 빈 나의 정원을 다독이고 아무리면서
생생한 추억의 탄환 쏟아놓는 봄날
찬란히 몸 여는 당신과의 만남으로
꽃대 차고 들어간 늦은 잠이 달디달다
해묵은 상처에 돋는 열꽃 같은 꽃더미
마지막 남은 목숨이 이승의 짐 덜기까지
향기로 넘쳐날 집 한 채 짓고 싶다
한 대궁 튼실한 사랑 뿌리내려 두고 싶다
―수수꽃다리
「수수꽃다리」 역시 3장 3연의 시조로서 빈틈없는 틀을 유지하고 있다.
1연은 단순한 봄날 정원 풍경에 대한 묘사처럼 보이지만 시인의 내면 세계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고삐풀린 꿈을 붙든 바람", "생생한 추억의 탄환" 같은 전경화된 표현들은
봄날 풍경을 생생하게 나타내주면서 동시에 그것을 시인의 내면 세계에 대한 묘사로 읽게 해주는 지표들이다.
여기서 정원은 단순한 정원의 의미를 넘어 겨울 정원처럼 텅 빈 시인의 가슴을 의미할 수 있게 된다.
겨울의 꽁꽁 얼었던 땅에 얼음이 풀리면서 고삐풀린듯 밀려드는 바람은
겨울의 텅 비었던 정원을 다독이고 아무리면서 일시에 생명들을 일깨워낼 것이다.
종장의 "생생한 추억의 탄환"은 「비」의 '우루루"처럼 봄날 정원처럼
황폐했던 가슴에 탄환처럼 꽂혀 부활하는 지난 날의 추억을 생생하게 표현해는 역할을 해주고 있다.
2연은 봄바람과 수수꽃다리의 만남을 남녀간의 사랑으로 환치시키고 있다.
"찬란히 몸 여는 당신", "꽃대 차고 들어간", "열꽃 같은 꽃더미"는
남성적 표상의 바람과 여성적 표상으로서
대지에 뿌리박고 있는 수수꽃다리 사이의 완벽한 결합을 성적인 이미지로 형상화시켜서 보여준다.
마지막 3연에서 시인은 전 생을 바쳐 "향기로 넘쳐날 집 한 채 짓고 싶다",
"한 대궁 튼실한 사랑의 뿌리 내려두고 싶다"는
1, 2연의 종합으로 수수꽃다리의 개화를 사랑에 대한 시인의 절절한 그리움과 결합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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