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에서

2009년 1월 10일 시골집 다녀 왔어요

햇살 한 줌 2012. 2. 17. 19:56

다음주로 수술 날짜를 받고보니 마음이 착잡해져

중얼거리듯

'부여에 가자' 고 말 했더니

주저없이 시골 갈 채비를 서두르는 옆지기...

 

예정에 없던 나들이로

준비물 챙기느라 한참 바쁘게 움직이다보니

집을 나선 시각은 오후 4시가 다 되어서였다.

 

모처럼 부부가 여행가는데

눈치 없이 따라가도 되겠느냐며 아는 언니가 따라 나섰고

안성휴게소에서 잠시 쉬었을뿐

계속 달렸는데도 공주에 도착할 때쯤

어둠을 밝히는 불빛이 눈 앞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신경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옆지기는 조심스레 운전을 했지만

서서히 피곤이 느껴지면서 자꾸만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즐거운 상상을 하면서 인내심으로 달려 온 시골집은

동네입구 가로등 흐린 불빛이 반겨 주었다.

 

자물쇠를 열고 늦은 저녁준비를 하려고 수도 꼭지를 틀었지만

매서운 겨울 바람이 컨테이너 집을 꽁꽁 얼려 놓았는지

화장실 수도꼭지마져 꼼짝을 하지 않았다.

 

다급해진 마음에 물을 얻어 오라고

주전자와 옆집 할아버지께 드릴 선물을 옆지기 손에 들려 보내고

냉장고를 열어 쌀을 씻고 전기밥솥 취사 버튼을 켰다.

 

옆지기와 둘이 갔으면 저녁이고 뭐고 모른척 누워있고 싶었지만

손님이 있는데 그럴 수도 없고

김치와 멸치 그리고 표고버섯을 넣어 김칫국을 끓이고

고등어 자반과 김을 곁들이고 고추장과 새우젓을 상에 올려 놓으니

그런대로 소박한 저녁 밥상이 차려졌다.

 

야간 운전 하느라 힘이 들었을 옆지기는 이슬이 한 병을 비우는 사이

설거지까지 끝마치고 나니 그야말로 피곤함이 천근만근이다.

 

아무리 그래도 숙녀 체면에 씻지도 않고 그냥 잘 수도 없는 일...

아침밥 지을 쌀을 씻어놓고 고무다라 가득 꽁꽁 언 얼음을 가스불에 녹여

고양이 세수를 하고 자리에 누워 바람소리를 청했다.

 

하지만

잠자리가 바뀌면 쉽게 잠들지 못 하는 성격이 요즘들어 더 예민해진 탓에다

보일러 온도를 높여놓아서 바닥은 구들방 저리 가라 할만큼 뜨거운데

외풍이 세어서 이불 밖으로 나온 얼굴은 썬듯한 느낌이 들고

옆에 누운 언니의 코 고는 소리가 자꾸만 신경에 거슬렸다.

 

한 시간쯤이나 눈을 붙였을까

새벽 3시쯤 소리 날세라 살금살금

옷을 챙겨입고 목도리에 모자까지 쓰고 마당으로 나왔다.

 

그렇다고 달밤에 체조하러 나온 건 아니었고

어둠 속에 누워 다른 사람의 단잠을 훔쳐보는 일도 별로라서

하늘의 별이나 세어볼까 하여서다.

시골은 불빛이 난무하는 도회지와 달리

어쩌다 한 군데 어둠을 지키는 가로등이 전부다.

 

우리 뒷 집에는 현관 앞을 밝히는 불빛이 밤새도록 빛나고 있었고

하늘엔 이름을 알수 없는 별들이 총총한데

눈 앞에서 번쩍 불빛이 움직이는 게 아닌가!

별 사이에 약간 붉은 빛을 띄운 별 하나가

강물을 헤엄치듯 별 사이사이를 지나가고 있는것이다.

 

이게 무슨 일인가...

특종 잡은 기자처럼 뻣뻣한 고개를 돌려 눈빛 붉은 별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 순간 보이지 않았다.

 

반짝이는 보석을 잃어버린 듯 아쉬운 마음에 다시 하늘을 쳐다보는데

또 붉은 별 하나가 지나가고 있다.

 

와....신기한 일이다

눈 푸른 별만 보다가 붉은 별을 만났으니 내 눈이 참말로 기특하다 싶어

열심히 뒤따라 가다가 또 놓치고 말았다.

 

아쉬운 마음에 마당을 서성거리다가 또다시 하늘을 올려다 보았더니

앞 서 놓쳐버린 붉은 별이

하나 둘 셋!

이번에도 셋이나 보이는....그때서야 멍청한 나는 깨달았다.

 

붉은 별이 아니라

밤하늘을 날아가는 비행기 눈빛이라는 사실을....

별이 아니면 어떠리...

 

잠시라도

신기한 별로 보였던 나의 착각이 고마운 밤이었다.